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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지면 제505호] 수원 복지타운을 알고 계십니까?

국가유공자들의 마지막 삶의 터전 그 분들의 소리를 들어 본다

임화철 기자 | 기사입력 2024/01/23 [07:41]

[본지 지면 제505호] 수원 복지타운을 알고 계십니까?

국가유공자들의 마지막 삶의 터전 그 분들의 소리를 들어 본다

임화철 기자 | 입력 : 2024/01/23 [07:41]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 공원에 새겨 있는 글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자유와 국가라는 명제를 가지고 지난 15일 방문한 곳은 보훈복지타운내의 자치회 사무실(수원시 장안구 광교산로 97)이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식민지국에서 많은 국가가 독립되었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를 확고하게 뿌린 나라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수혜국가에서 주는 나라로 변모한 국가도 대한민국이다. 원조를 받는 국가 모임에 가보면 한국을 그렇게 부러워한다. 그 밑바탕에는 자유 수호를 위하여 헌신하신 국가유공자들의 헌신이 지대했음은 우리가 익히 하는 사실이다.
 그런 지난한 역사가 필자로 하여금 사회에 전파해야 할 조그만 역할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욱 필요하다. 그런 연장선에서 자치회 방문은 큰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임화철 수석부회장과의 대담을 필두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Q. 보훈복지타운에 살고 계시는 분들의 현황을 설명해 주세요.
 현재 440명이다. 입주 자격으로는 독립유공자 부부 3대손, 6.25, 월남 참전 상이군경, 무공훈장 수훈자, 전몰 전상군경 미망인 유가족, 4. 19의거 등 기준에 부합한 분들이다. 부부일 경우 13평, 독거일 경우 8평 정도 된다. 공유면적이 크기 때문에 일반 평수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Q. 거주하시면서 애로사항은 어떤 사항이 있는지요.
 이동수단인 한아름 콜(이전에 해피콜)을 3급 이상자만 이용할 수 있게 조례가 변경되는 바람에 많은 분들이 이용할 수 없어 완화해 주시길 바란다. 많은 분들이 노쇠하고 언제 돌아가실 줄 모르는 사항이라 생전에 편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게 관계기관에 있는 분들이 배려해 주시길 간곡히 바란다. 앞으로 5년 정도 되면 대부분 이 세상을 떠날 연세들이다.
 또 하나 지금 아파트가 30년 가까이 되었기 때문에 많이 노후되었다. 천정에 곰팡이가 끼고 물이 새는 등 거주에 불편이 크다. 보수공사를 시급히 해서 쾌적한 분위기 속에서 살 수 있도록 예산지원을 부탁드린다.
 임 부회장의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모습이 청년을 방불케 한다. 관계기관과의 회의와 방문 등을 통해 주민들의 권익을 위해 주야로 열심히 뛰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월남전에 파병하여 많은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했다. 이곳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공헌하시고 국가유공자분들의 보금자리이다. 
 마을 입구에 타운의 유래가 있어 적어본다. 「대한민국의 유일의 보훈복지타운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에 보훈기금 150억원을 투입하여 건립된 국가유공자 및 그 유족들을 위한 아파트이다. 고령화된 국가유공자들의 복지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1994년 6월 보훈복지타운기공식으로 시작으로 2년여 간의 공사 끝에 1996년 7월 총 452세대가 준공되었으며, 1997년 7월부터 국가보훈처의 입주자 모집으로 많은 국가유공자 및 그 유족 세대가 입주하여 노년기에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며 거주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보훈원)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기사를 취재하면서 복도에 나와 계시는 미망인들과 잠시 환담을 했다.
 “여기는 산속이라 공기가 좋다. 점심, 저녁 식사비가 1,000원만 내면 먹을 수 있다. 좋은 친구들과 얘기도 나누고 너무 좋다”라고 말하고, 옆에 있는 친구도 한마디 거든다. “국가에서 이런 배려를 해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늘 감사하며 살려고 한다”라며 국가에 대한 감사를 표한다. 타운을 돌면서 경로당 위치에 대한 안내를 받고 방문했다. 그곳에는 70∼80대 할머니들이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다들 밝은 얼굴이었다.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임을 여실히 보게 된다.
 필자는 평소 국가관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현직에 있을 때도 저명한 애국지사(고 채명신 주월한국군 사령관)들을 초빙하여 강연을 들었다. 특히 34년 전 부산보훈보훈병원에 필자가 소속한 멤버들과 함께 봉사할 기회가 있었다.
 6.25 참전용사들이었는데 상흔이 짙은 육체를 보는 순간 가슴이 저미어 오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당연히 생활 영위는 부인이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또 하나 26년 채명신 전 주월한국군 사령관을 비롯한 여러 월남 참전용사들과 함께 식사 자리에서, 각종 애로사항과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고엽제 피해자로 고생한 얘기, 생활은 부인인 꾸려간다는 고생담이 필자로 하여금 국가관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사실 필자가 복지타운 내에 보훈원(일종의 요양원 형태)도 방문하려고 했지만, 코로나 등 감염 우려 때문에 외부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어 취재하기가 불가능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다양한 문화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즐거운 노후를 보낸 사진들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 취재를 마치고 산속에 자리 잡은 아담한 보금자리를 쳐다보며, 국가유공자분들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시기를 간절히 빌었다.
 임화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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